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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치는 치아에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255 단어수·2 분
작성자
Violetdusk
A software engineer, social hermit(obviously)

나는 충치가 정말 많은데, 그 중 어금니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 한 짝이 썩어 박살이 나버렸고 신경이 노출된 채로 8년간 방치해 두었다. 차가운 물을 마실 때 마다 천지가 떨리고 턱을 톱으로 깎는 듯 아팠지만 참았다. 치과에 갈 돈이 없었으니까. 나도, 우리 집도.

그 당시에 충치는 큰 일이 아니었다. 형도 어머니도 어금니며 충치며 이빨이 성한 사람이 없었으니까. 성인이 되어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는 아프지만 치과보다 우선적으로 써야 할 돈들이 너무 많았다. 그렇게 방치된 채로 시간은 흘러 나는 본가를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코로나가 한창 창궐하고 모두가 긴급 재난 지원금을 받던 해에 나는 지원금 40만원과 당시 남은 돈 20만원가량을 겨우 모아서 치과의 문을 두드렸다. 인레이 8개와 신경치료 및 크라운 1개가 견적으로 나왔고 나는 일단 깨져버린 어금니를 고쳤다. 8년만에 돌아온 어금니는 참으로 어색했고 양 볼로 음식을 씹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행복한 것이었다.

지원금은 떨어지고 어금니는 떼워진 그 후로 치과는 다시 한없이 밀려 우선순위 저 뒷자리 내지는 인생 목표 비슷한 것으로 물러났다. 후로 2년이 지난 오늘, 이번엔 이 전쟁을 끝내고자 다시 치과를 찾았다. 또 재난 지원금을 받은 것이라 묻는다면 단언코 아니다.

치과는 2년 전과 완전히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드릴소리, 치과냄새, 살짝 낡은 듯 한 진료의자, 나를 덮는 무시무시한 초록 천까지도. 그렇지만 내 마음만은 굉장히 편했다. (뭐, 무섭긴 했는데)

모든 치료가 끝나고 내 잇속에는 더 이상 충치가 없다. 해방감과 만족감도 잠시, 이 모든 편안함은 당연한 것이 되었고 으레 당연한 게 맞다.

이제는 그 때 처럼 매번 계산기를 두드리며 돈이 어쩌네 가족이 가난하네 어쩌네 하며 굴진 않음에 감사한다. 그런 괴로움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맞지만 그것이 썩 보기에 유쾌하지도, 생산적이지도 않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충치는 치아에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