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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334 단어수·2 분
작성자
Violetdusk
A software engineer, social hermit(obviously)

29년 전 오늘, 곧 닥칠 외환위기로 평범하게 망해버릴 가정에 서 내가 태어났다. 지독한 농담처럼 그 동네의 이름은 부민동이었다. 부민 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드높은 부민동 산복도로 위에서 내 기억 이 시작되었다.

결과는 평범하다. 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청년, 막 대학교에 입학한 새내 기, 하교하는 학생, 조용한 집. 그러나 결과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은 모 두가 다 다르다. 우리는 스펙트럼 속에 살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항 상 결과보다는 과정을 더 사랑한다.

조용한 집은 항상 살얼음판이었다. 집안에 감도는 팽팽한 적막이 누군가 손을 놓는 순간 튕겨나와 온 방을 헤집어놓기 일쑤였다. 그렇기에 나는 항 상 빌었다, 이 조용함이 떠나지 않기를, 그리고 우당탕탕 부서지는 소리가 내 잠을 깨우지 않기를.

이런 생각과 친해지다 보면 기도로는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수는 시간이 지날 수록 쌓여 인간은 적응한다. 그리하여 자연스레 없는 체 하게 된다. 뇌의 자연 노이즈 캔슬링 성능은 그 어떤 기술보다도 강력 하고 파괴적이다. 전자오락이나 하면서, 엎드려 퍼질러 자면서, 그도 여의 치 않다면 자는 척을 해서라도.

IT 강국 (이제 옛말인가…) 대한민국 답게, 우리는 인생에 있어서도 참 바 이너리하다. 꽁꽁 묶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다가, 성인이 되는 그 해 일순간에 모든 제약에서 풀려난다. 중간은 없다. 등떠밀려 하루아침에 얻게 되는 자유에는 많은 댓가가 따랐다. 내가 본 것은 총천연의 스펙트럼 이었다. 찬란한 빛의 향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평가하고, 줄 세우고, 증오하고, 시기하는 것 뿐이었다. 그것 밖에 배우지 않았으니까.

세상을 내 입맛에 맞게 샘플링해서 보면 잡음도 잘려나가고 정보의 양도 줄어든다는 점에서 어떤 의미로는 참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꼴 에 세상을 재단하며 내가 먹기 좋게 칼질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그 칼 에 베였다는 걸 깨닫기 전 까지는 말이다. 결국 조용함과 마음의 평화를 위해 모든 것을 꽉 묶어서 손이 터질 듯 쥐고 있던 것은 나였다.

“키우기 시작한 이상 잡초가 아니다” 라고 인터넷에 떠돌던 말이 참 좋았다. 내가 잡음이라고 생각했기에 잡음이고, 잡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잡음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텔레비전 속의 회색 치지직 화면도 사실은 우주 배경 복사가 아니던가. 노이즈 캔슬링을 끄고, 핸드폰 카메라가 아닌 맨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내가 무서워하고, 미워하고, 증오했던 그 모든 것들에서 새로운 신호를 발견하고 싶다.

내가 디지털 인간은 아니기에, 태어난 지 딱 29년째 되는 날 스위치처럼 딱 바뀌진 않겠지만 말이다.